성막이야기(5)-번제단의 구조


출 27:1-8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성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번제단이다. 번제단의 재료는 싯딤나무의 조각목에 놋을 입히는 것이다. 싯딤나무는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며 놋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상징한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음을 상징한다.

번제단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각각 5규빗 2.5m씩 같으며 높이가 3규빗 1.5m이다. 성막의 기구 중 가장 큰 크기로 보통 키의 가슴정도 온다고 볼 수 있다. 고리에 체를 걸어서 법궤와 마찬가지로 번제단을 메고 운반했다. 그래서 단이 있고 그물망을 그 안에 넣어서 사용하게 된다.

성경에서 숫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숫자3은 삼위일체라는 하나님의 수를 말하며, 숫자4는 동서남북 즉 사방 또는 세상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세상이라기보다 동서남북으로 상징되는 세상자체를 말한다. 5란 숫자는 고통의 수이면서 역설적으로 은혜의 수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상처를 받으신 흔적이 양손, 양발 그리고 옆구리 이렇게 5군데이다. 예수님의 성흔이 5군데이기에 고통의 수이지만 그 예수님의 고통 때문에 우리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5라는 숫자는 은혜의 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 - 번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소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번제단을 가로, 세로 5규빗으로 한 것은 고통이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은혜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숫자6은 사단의 수이다. 숫자6이 세 번 모인 666은 적그리스도의 숫자가 된다. 숫자7은 성경에서 좋은 숫자로 나온다. 하나님께서 7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고, 유월절이나 초막절의 절기를 지내는 날수가 7일이었다.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몸을 7번 담갔으며 이스라엘백성은 여리고를 7일 돌았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7언을 남기셨다. 결국 번제단은 고통이 있으면서 은혜가 있는 곳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과 그로 말미암은 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번제단의 형태는 사방을 향해 있는 정사각형이다. 이것은 온 세상을 위한 고통이자 은혜라는 것이다. 구약의 번제단은 신약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동서남북 온 사방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소식을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한다. 영어로 복음은 Good News라고 한다. 여기서 News라는 단어는 N.e.w.s 즉 북쪽(North), 동쪽(East), 서쪽(West), 남쪽(South)의 첫 글자이다. 온 세상의 사방에 퍼져야 할 복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식이다. 또한 동서사방에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에 우리가 힘써야 한다는 것을 번제단의 정사각형 구조가 말해주고 있다.

번제단에는 양 모퉁이에 4개의 뿔과 그물망이 있다. 이 뿔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힘과 능력, 생명을 상징한다. 시편 18편2절의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는 말씀은 야훼께서 나의 능력자 되시고 힘이 되심을 말해준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의 뿔이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번제단에는 제단뿐만 아니라 대야,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부삽, 재 담는 통 이렇게 5가지의 보조 기구가 있다. 이 보조기구들은 각각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역할을 상징한다. 성막 안에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도가 해야 할 사명을 가르쳐준다.

대야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 번째는 각을 뜬 고기를 담아 나르는 역할을 한다. 각을 뜬 고리를 담아서 그물망 위에 올려놓는 일 또는 제물을 죽였을 때 피나 고기를 담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피를 뿌리거나 혹은 번제단을 제물로 채우는 역할을 한다. 번제단을 제물로 채운다는 것은 십자가로 영혼을 인도하는 사명을 상징한다. 그래서 대야는 성도에게 전도해야하는 사명이 있음을 상징한다.

갈고리는 고기가 타는 동안 떨어지지 않도록 그물망에 걸어 놓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야성도가 영혼을 인도하는 번제단을 제물로 채우듯이 십자가 앞으로 영혼을 인도해오는 사명을 감당한다면, 갈고리 성도는 시험에, 세상에 떨어지지 않게 붙잡고 양육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전도하는 성도와 양육하는 성도 모두 필요하다. 또한 전도와 양육 모두 중요하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그물을 던지는 제자와 그물을 깁는 제자가 있다. 열심히 그물을 던지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고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깁고 보수하는 제자가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성도인가?

한 곳에 정착을 하는 동안에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한다. 번제단의 불은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불이다. 성막이 완공됐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주신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도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주셨다. 하늘에서 내린 불로 성막과 성전의 불이 타올랐다. 하나님은 이 불이 꺼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제사장들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가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간수(看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동할 때 불은 끄더라도 불씨를 이 그릇에 담아서 이동하였다. 불을 옮기는 그릇은 신약의 교회가운데 불씨와 같은 성도를 말한다. 교회에는 두 가지 성도가 있다. 불타는 성도와 불 쬐는 성도가 있다. 불 쬐는 성도는 혼자두면 가라앉아 식어버리고, 시험들고 세상에 빠지며 기쁨이 없는 사람이다. 불타는 성도는 열정과 기쁨이 있다. 물론 세상이 공격할 때도 있지만 지배적인 분위기는 열정과 기쁨이다. 이것이 바로 불타는 성도의 특징이다. 불 쬐는 성도는 반대로 기쁨 없이 의무감과 부담을 가지고 억지로 한다. 이것은 불이 없기 때문이다.

부삽은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우거나 불을 지피기 위해 나무를 태우고 난 후에 재를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한다. 만약에 재를 부삽으로 끌어내어 따로 처리하지 않으면 쌓인 재로 오히려 불을 꺼버리게 된다. 그래서 재를 끊임없이 끌어내주고 청소를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재 담는 통은 부삽으로 끌어 모은 재를 담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성도 중에도 부삽 같은 성도와 재 담는 통 같은 성도가 있다. 부삽성도는 자꾸 재를 끄집어내어 환경을 깨끗하게 한다. 재 담는 통 성도는 재를 담아서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교회에는 재를 뿌리고 다니는 성도도 있다. 재를 수습하고 제거하고 처리하는 성도가 되어야지 뿌리고 다니면 안 된다. 재를 뿌리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는 성도를 말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문제를 해결하고 수습하고 화해시켜서 화목케 하려는 성도가 있다. 부삽과 재 담는 통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성도가 많을수록 교회는 좋아진다. 이러한 보조기구들이 번제단과 함께 기능을 하게 된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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