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이야기(2)-성막이 주는 유익


성막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즉 하나님의 임재 안에 이를 수 있는 코스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2)고 하셨다. 우리에게는 큰 은혜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거기서 우리와 만나주시겠다는 것이다. 죄와 죄짐에 눌린 저주스런 인생들이 성막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고 태어나 자라면서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다. 요즘 식으로 하면 야곱은 모태신자였다. 그러나 그가 진정 하나님을 만난 것은 벧엘에서였다.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전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배우고 알고 있었지만 벧엘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안타깝게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하나님에 대해서 듣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성막을 순례하는 것은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교회사적으로 은혜와 임재의 역사가 강했던 교회들은 저마다 여러 모양으로 성막에 대해 깊이 풀어가는 시간을 가졌던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축복이고 은혜이다. 바람과 파도와 온 천지조화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죄와 죄짐에 눌린 인간들을 성막에서 만나주시는데 심판이 아니라 축복과 은혜로 만나주시는 장소가 성막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막은 우리를 하나님의 접견실로 인도하는 안내도이며, 약도이다.

성막이 주는 또다른 유익이 있다. 올바른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고 말한바 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만드셨다. 처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직접 하나님과 교제했다. 하지만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그들은 돌단을 쌓았다. 이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는 출애굽 과정 때부터는 성막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면서 성전시대가 열린다. 구약시대가 끝나고 은혜의 시대가 열리면서 교회시대가 이르렀다. 성소 개념을 기준으로 할 때 교회 시대는 성도들의 마음에 성전이 자리하는 심령 성전의 시대이다. 즉, 마음이 성전인 시대인 것이다. 성경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믿을 때, 성령께서 그 마음에 계시므로 그 마음이 성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마음 안에 계시므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성전삼아 하나님을 섬기다가 새하늘과 새땅과 새 예루살렘성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에게 열리게 된다. 성경은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라고 기록하고 있다. 장차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의 장막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장막, 성소, 성전은 하나님의 장막에 비하면 상징과 모형에 불과한 것이다. 하늘의 장막이 원형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심령이 성전인 교회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약하거나 없다면 무엇부터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성막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다. 구약의 성막구조는 현재 마음의 성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사람이 성전으로서 잘 지어졌는지 분별하게 해준다. 구원 받은 사람은 성전이 세워질 수 있는 자격은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짓게 될 준공(竣工)이 떨어진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직 준공이 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준공검사가 떨어지지 못한 것은 성전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죄 된 것과 육신의 정욕과 세상적인 것 때문에 성소가 황폐해진 것이다. 학개시대는 실제 예루살렘의 성전을 두고 말한 것이지만, 마음이 성전인 성소된 마음의 상태가 황폐하게 된 것을 말한다. 성전이 황폐하면 축복이 흐르지 못한다. 지금 겪는 어려움들은 세상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글로벌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무리 사막이라도 오아시스는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막 같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우리를 오아시스와 같게 하실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마음의 성전이 황폐해 있다면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막은 마음의 성전 상태가 어떤지 알게 해주고 성전 준공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혹시 심령이 메말라 있지는 않은가? 지금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나 생활환경 때문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흐르는 길에 무엇인가가 막혀있기 때문인 것이다. 성막을 통해서 점검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 때로부터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기왕이면 준공검사가 떨어져 하나님의 기준에 흡족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성전의 골격은 있되 내외장은 형편없는 흉물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의 흐름은 막히기 십상일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우리들의 목표는 신령한 집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성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성막의 순례를 통해 깊은 은혜와 갱신의 체험이 있기를 소원한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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