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30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일어나는 신자의 부활은 신령한 몸으로 전환하는 신비다. 바울은 부활의 몸을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고 했는데(고전 15장), 썩어질 지금의 몸과는 전혀 차원 다른 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식사가 가능했다(눅 24:43). 부활하면 몸을 지니고 있지만 결혼이 필요없는 천사들과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바울은 부활을 씨앗과 열매, 혹은 씨앗과 꽃의 관계로 비유했다. 작고 까만 알갱이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고, 그렇게 튼실한 열매가 맺어진다는 사실에서 이미 부활이 지닌 전환의 차원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에 신성과 능력이 가득한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들이 실은 엄청난 비약과 전환을 담고 있다. 거기에 이성과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스케일에서 지구의 시간과 인간의 역사는 한 경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역사 안에 낀 나의 인생은 보이지도 않을 터이다. 헬렌 켈러는 죽음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하는 것 뿐이라고 했는데, 그런 이동을 거쳐 이르게 되는 영원한 천국이 대단히 흥미롭다. 아브라함도 바라마지 않았던 그 영광스런 본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내겐 아버지 집이 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10:8

욥 10: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죽임당했을 때, 반응이 여러가지였다. 우선 두드러진 것이 ‘신 죽음의 신학’이었다. 신은 죽었다는 것이다. 신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생각이다. 사실상 신을 버

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