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2-3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할 때 나귀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귀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는 말에 즉각 순종한다. 당시의 경제 수준으로는 귀한 재산이었다. 무슨 일에 어떻게 쓸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기꺼이 나귀를 내어준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무언가를 타고 다니지는 않으셨던 거 같다. 다소 이례적인 이 상황은 이번 입성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려준다. 스가랴의 예언을 이루시는 것이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곧 그다’라고 하시는 것과 같다. 제자들은 ‘아 드디어..’ 하며 전율했을 수 있다. 나귀 주인의 즉각적 순종이 눈에 띈다. 여러 이유를 들어 노골적으로, 혹은 완곡하게라도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보냈다. 절대왕정에서 왕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않음은 자멸로 가는 길이다. 왕에게 곱게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볼 때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일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사랑과 자비의 왕이시기에 오래 참으시며 용납하시는 은혜로 덮어주셨다. 기막힌 역설이다. 불순종이나 지연 순종만큼 은혜가 쌓인 셈이다. 바울은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쌓였다 했는데 내 삶이 꼭 그렇다.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듯 그 수준에 맞게 이해하고 품으시는 사랑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부터라도 즉각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주께서 쓰신다 함이 참 귀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