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0: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십자가 이전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했으면서도 여전히 세속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주요 동기는 제국을 몰아내는 정치적 혁명이었고 그 날에 요직을 차지하는 계산속이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주의 나라와 주님이 생각했던 주의 나라는 완전히 달랐다.
주님과 함께 다니며 그렇게나 들었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기네 신념과 야망에 매달려 있었다. 십자가의 수난을 말해도 귀에 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엄마였던 살로메가 뛰어들어 청탁을 한다. 점입가경이다. 예수님이 잔을 얘기했을 땐 승리의 축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하다.
지금 내가 주님께 구하는 것은 어느 쪽에 속할까. 살로메의 청탁 같은 것은 없을까.
예수님이 마시라하는 잔에 대해 계속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계산 속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주님의 기준과 다른 주의 나라를 그리고 있는 건 아닌가. 주님을 세상의 헤드헌터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본문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적어도 이 땅에선 섬김과 낮아짐에 바탕하지 않은 것은 그 소스가 불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온유와 겸손에 바탕하지 않은 것은 주님께 속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서 섬김과 온유함으로 사셨던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 바탕을 지닌 자가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서 주의 곁에 앉게 될 것이다(엡 2:6). 헛짚는 청탁이 아니라 올바른 청탁을 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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