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18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계속 사랑의 주제를 다룬다. 마치 우리들의 옛사람과 겨루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활동하는 이유는 아직 온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거 같은 데도 온전하지 않은 이유는 니그렌이 말한 그 에로스, 즉 자기애가 섞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멀지도 않지만 가깝다고도 할 수 없다. 가깝지 않은 이유는 자기애가 섞인만큼 자기를 의지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를 의지하는 만큼 두려워한다. 내가 해야 하는데.. 내가 버텨야 하는데.. 등등 ‘내’가 전면에 나서면 아담의 타락 이래 땅에 배인 저주와 사탄의 활동에 먼저 노출된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 감당이 안되는 것들이기에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자기애가 있다해서 꼭 자기를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타락한 자기중심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하나님 그늘 아래 온전히 들지 못한 것이다.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그러했다.


온전한 사랑을 얻는 길은 성경과 성령께 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을 알게 하고 성령님은 그 사랑을 부어주신다. 평안을 얻는데에 경건이 중요한 이유다. 진짜 평안은 돈이나 지위로 얻을 수 없다. 일관된 경건은 주님의 날개 아래 머무는 것과 같아서 저주와 사탄을 맞받아치는 일은 주님께서 먼저 하신다. 이를 앞서 행하신다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연약해도 부모 품에 있으면 한없이 평안해진다. 오늘도 아이가 부모 품을 찾듯 경건을 통해 주님의 품을 찾는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금메달을 바라보며 훈련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절제다. 식생활의 절제, 시간관리의 절제, 멘탈의 절제, 심지어 운동량의 절제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상당히 넓다. 절제가 안 된다는 것은 본능에 무릎꿇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고전 8:12-13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다신교 사회였던 고린도에는 우상제사에 드려진 음식들이 시장에 나돌았고, 비신자의 집에 초청받을 경우 그 집에서 섬기는 우

고전 7: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바울의 결혼관은 철저히 주님과의 관계를 우선한다. 결혼은 인간사회의 모든 제도 중 하나님께서 선제적으로 만드신 제도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창조주의 뜻을 펼쳐나간다. 특히 결혼을 통해 세워진 가정은 신앙전승의 통로가 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부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