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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9-10 [12월 15일]

전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크든 작든 공동체는 귀하다. 예수님도 세 사람, 혹은 열 두 사람과 함께 지내셨다. 겟세마네 현장에선 제자들에게 기대기도 하셨다. 신앙고백의 원천인 사도신경은 성도의 교제를 언급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다. 하나님은 ‘홀로’보다 ‘서로’를 선호하신다.


‘소명적 홀로’가 있을 수있다. 직업적으로, 혹은 선교 차원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경우다. 대체적으로 ‘정서적 홀로’는 영적인 주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의 우려점 중 하나가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는 이웃 사랑의 부재에서 피어난다. 자기애가 강한 경우는 심각하다. 사람들이 곁에 오지 않는 현상이 생길 수 있어서다. 신앙의 영역에서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줄 수 있는 동무가 있는가. ‘서로’의 길에는 상이 있지만 ‘홀로’의 길에는 화가 있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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