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3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본디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와 같았는데 그 성경을 좇아 사는 신자 역시 그 누군가를 향해서는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의 언행심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편지다. 편지의 내용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쓴다. 사실 그 부분만이 진정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성령의 열매와 은사로 써진다. 나머지는 나의 육신이 쓰는 것이다. 세상도 이런 구도를 아는 거 같다. 인도의 국부 간디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예수는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와 너무 다르기(so unlike) 때문이다.’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부분만이 그리스도의 것이다. 신자는 죄와 세상을 경계한다. 그러나 오랜 동안 죄와 세상에 물들어 있었음에도 자아(self)에 대해서는 안이하다. 오랜 동안 익숙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부단히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으려 힘씀이 정답이다. 참된 신자의 자아는 단독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자아다.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와 같다. 내 안의 그 분에게 예를 차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창 9: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불은 타고 나면 재라도 남지만 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남아 있는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자연세계가 사람으로 인해 끔찍한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이 되셨

창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곧바로 희생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드린다. 제물의 죽음은 대속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희생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용납되었다. 그 시초는 타락한 아담의 몸을 가리우기 위해 가

창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어마어마한 심판이 집행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일정은 적시에 진행되었다. 방주에 저장된 양식의 재고를 헤아리시며 상황을 통제하셨다. 생존에 지장이 없게끔 간수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택하신 대상을 잊지 않으시며 필요한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