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12~13

고전 8:12-13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다신교 사회였던 고린도에는 우상제사에 드려진 음식들이 시장에 나돌았고, 비신자의 집에 초청받을 경우 그 집에서 섬기는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접대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연히 우상 제물로 드려졌던 음식의 취식문제가 제기된다. 고린도교회가 2차 선교여행 때 개척된 것을 감안하면 이미 이방 교회에는 ‘우상의 더러운 것을 멀리 하라’는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 기본 지침으로 전해졌을 것이다(행 15:29).


그럼에도 일부 교인들은 우상의 허구성을 들며 음식을 문제삼지 않는 담대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 같고, 그로 인해 믿음이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 사이에 갈등이 야기되었다. 사실 바울도 우상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므로 거리낌이 없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겼지만 그런 것에 영향받는 약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권한다. 진위의 차원이 아니라 배려의 차원을 제시한 것이다. 이로써 바울은 죄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내 믿음 좋다고 내 방식만 고집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경계선을 잘 그을 필요가 있다. 순전한 신앙을 굳건히 하다보면 성경적 기준을 고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나 과시하듯 드러내는 동기가 있는지를 주의하면 될 거 같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대하려 애썼다. 비소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아량의 모티브다. 여전히 충성스런 믿음은 귀하다. 그러나 사랑의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역시 온전한 충성은 아니다. 그런 줄 알았지만 바울 본받기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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