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고린도전서 5:7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벌어지고 있던 음행의 죄를 정리하라고 권하면서 누룩의 교훈을 전한다. 누룩은 죄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릴 때, 누룩없는 빵, 즉 무교병을 드린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권하신 바 있다(마 16:6). 참된 신자는 ‘누룩 없는 자’이면서도 한편으론 묵은 누룩을 버리는 자이다.


참된 신자는 중생한 그 시점서부터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에겐 법적으로 의인이 된다. 이른바 ‘칭의’의 은총이다. 누룩없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생 이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죄성과 죄의 습관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 ‘성화’의 여정이다. 묵은 누룩을 내버리는 과정이다. 분명한 것은 신자의 참된 정체성이 ‘누룩 없는 자’라는 사실이다. 이미 새 덩어리가 된 것이다. 이 대속의 진리를 붙들고 내면과 생활을 다루어 나가는 것이다.


성화는 일종의 싸움이다. 이미 패배한 죄의 잔당을 처리해가는 과정이지만 죄성의 반발이 녹녹치 않을 때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한국전쟁이 끝나서 주권이 회복되었어도 남한은 지리산 공비들로 인해 한참이나 곤욕을 겪었다. 이미 십자가로 죽었지만, 바울처럼 날마다 죽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룩없는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즉 주님과 연합한 존재임을 우선적으로 의식하면서 힘써 묵은 누룩을 내버려야 한다. 주님께서 응원하신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진언하고 있다. 추상같은 때에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왕의 광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이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을 중심으로 아둘람공동체가 세워진다. 환난 당한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인생의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윗에게서 그 출구를 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다윗임에도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기득권을 포기한 우정, 아버지와의 분리를 각오한 우정으로 다윗은 살았다. 결국 이 우정이 훗날 다윗을 왕위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