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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1:8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본디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은 무흠해야 했다. 물론 현미경으로 훑듯이 한다면 완전무흠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흠한 제물을 요구하는 레위기의 수많은 규례들은 사실상 ‘하나님을 향한 최선의 마음가짐’ 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한다면 능히 지켜낼 수 있는 규례다. 요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깊이 문제다. 말라기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총독보다 예우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육신을 입고 물리의 세계에 살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더 가깝고 중요하게 다가 오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이라면 달라져 가야 한다. 신앙의 여정이란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마음가짐이 달라져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종종 직장의 상급자나 거래처의 구매 담당자를 대하는 자세의 절반 정도만 예우해도 하나님께서 매우 놀라서 당황해 하실 거 같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다.


‘영리’의 관점에서 ‘물리’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믿음이다. 주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며 반문하신 적이 있다. 물리에 푹 젖은 사람의 성정을 익히 아신다는 말씀이다. 말라기 역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며 안타까움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하나님을 너무 쉽게 대하여 왔다. 다시 변화를 가지도록 힘써야 한다.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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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가만히 들어온 사람은 이단을 말한다. 이단은 처음엔 비슷했다가 끄트머리에서 표변한다. 그들의 논지는 비슷하다. 결국 예수 그

삼상 31: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사울은 전장터에서 자살로 생애를 마감한다. 블레셋에게 죽임당했다는 모욕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울의 재

삼상 30: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아말렉을 쳐부순 뒤, 전리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거론된다. 본문은 이 때 다윗이 내린 지침을 알려준다. 즉 전방에 있던 사람과 후방에 있던 사람 사이에 차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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