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본디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은 무흠해야 했다. 물론 현미경으로 훑듯이 한다면 완전무흠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흠한 제물을 요구하는 레위기의 수많은 규례들은 사실상 ‘하나님을 향한 최선의 마음가짐’ 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한다면 능히 지켜낼 수 있는 규례다. 요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깊이 문제다. 말라기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총독보다 예우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육신을 입고 물리의 세계에 살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더 가깝고 중요하게 다가 오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이라면 달라져 가야 한다. 신앙의 여정이란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마음가짐이 달라져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종종 직장의 상급자나 거래처의 구매 담당자를 대하는 자세의 절반 정도만 예우해도 하나님께서 매우 놀라서 당황해 하실 거 같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다.
‘영리’의 관점에서 ‘물리’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믿음이다. 주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며 반문하신 적이 있다. 물리에 푹 젖은 사람의 성정을 익히 아신다는 말씀이다. 말라기 역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며 안타까움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하나님을 너무 쉽게 대하여 왔다. 다시 변화를 가지도록 힘써야 한다.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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