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거라사에 군대 귀신들린 자가 있었다. 귀신이 인격을 통제하며 조종하는 심각한 병리적 상태였다. 귀신이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하기도 했다(막 5:7). 유다에게 들어간 사탄은 귀신들림과는 다른 차원이다.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킨 상태다. 유다는 그 생각이 사탄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돌이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아이디어로 여겼다. 생각의 영역에서 치열한 싸움이 있다는 사실에 무지했다.
주님 곁에서 3년간의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도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서늘하다. 제자 훈련을 받았는가의 여부보다 그 훈련이 거짓된 자아를 변화시켰는가가 더 중요한 이유다. 영성훈련 과정에서 왜 사람은 그토록 변화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들이 있었다. 주님 만나기 전부터 세워진 견고한 진들이 아직 무너지지 않은 까닭이다. 영적인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이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판 유다와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 뗀 베드로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베드로의 경우는 연약함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속에 있던 연약함이 드러난 것이다. 반면 유다에겐 스승의 죽음을 계산한 고의성이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열 둘 중의 하나’ 라는 영광의 자리를 걷어찬다. 시편 기자는 마음을 시험하사 뜻과 양심을 단련시켜 달라고 간구했다(시 26:2). 생각을 간수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검증도 필요하다. 사탄이 계속 넘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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