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누가복음 20:37~38


눅 20:37-38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그나마 바리새인들은 죽음 건너편의 세계를 인정하고 부활도 믿었지만, 권력지향적이고 세속지향적이었던 사두개인들은 신정사회였던 이스라엘에 살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았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부활의 진리를 증거하신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육체의 죽음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혼이 하늘에 영원히 살아있음을 전하신다.


간간히 영혼의 소멸론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휴머니즘 차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에서 나오는 관점이다. 유명한 존 스토트 목사님도 영벌의 개념을 해석할 때 아쉽게도 이 관점을 취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소멸론을 말하지 않는다. 흙에서 온 육체는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영혼은 불멸한다. 그래서 이제 죽음 건너편에서 그 영혼이 어떤 상태로 있게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생이냐 영벌이냐다.


영원의 관점에서 금생은 우물 안의 세계와 같다. 반면 우물 밖의 세계인 내세는 무한하며 무궁하다. 다행히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세계를 미리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소망의 마음으로 준비하는 길을 가게 하셨다. 잠시 뿐인 이 세상에서 후회롭지 않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남은 날들이 귀하다. 오늘도 그 중 한 날을 살아간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진언하고 있다. 추상같은 때에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왕의 광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이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을 중심으로 아둘람공동체가 세워진다. 환난 당한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인생의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윗에게서 그 출구를 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다윗임에도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기득권을 포기한 우정, 아버지와의 분리를 각오한 우정으로 다윗은 살았다. 결국 이 우정이 훗날 다윗을 왕위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