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욥기 40:3~4


욥 40:3-4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봇물터지듯 쏟아졌던 하나님의 질문들 앞에서 욥은 자신의 비천함을 느꼈다. 그 비천함은 부정적 자아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한계를 절감한데서 온 통렬한 자각이다. 하나님의 현현 전, 그는 피해를 입은 원고의 자리에 섰었다. 의인의 고난을 놓고 경위를 따져묻는 조사관의 자리에 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를 두고 2절에서 욥을 향하여 ‘하나님을 탓하는 자’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욥은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고난을 놓고 터뜨려 온 항변의 마음이 이탈로 가지 않은 것부터 은혜다. 일찌기 욥의 아내는 그 길을 택했다.

항변은 이제 침묵으로 바뀐다. 하나님을 탓했던 마음은 자신의 비천을 깨닫는 마음으로 변하며, 원고의 자리에서 판단했던 마음이 경악의 마음으로 바뀐다. 자신이 몰랐던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음을 직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난으로 인해 불만과 항변이 앞설 때가 있다. 사실 헛짚는 일이다. 그 고난이 하나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담의 죄악으로 이미 땅이 저주를 받은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의도 모른 채, 하나님의 법을 마구 어기며 살아간다. 이미 저주 받은 땅 위에 각자의 불순종에 따른 저주가 첩첩이 쌓여 고통은 더해간다. 하나님은 고난의 쳇바퀴 안에 있는 우리를 건지러 오신 분이다.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찾아오셨다. 영맥을 잘 짚어야 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진언하고 있다. 추상같은 때에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왕의 광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이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을 중심으로 아둘람공동체가 세워진다. 환난 당한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인생의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윗에게서 그 출구를 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다윗임에도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기득권을 포기한 우정, 아버지와의 분리를 각오한 우정으로 다윗은 살았다. 결국 이 우정이 훗날 다윗을 왕위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