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8:31-32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절감하게 되는 것은 은혜다. 세계관의 변화인데, 그를 통해 사람은 창조주의 존재를 깨닫고 비로소 제 자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눈을 들어 끝없는 우주를 대하면 지구라는 작은 행성과 그 안에 벌레처럼 꾸물거리며 나의 모습이 보인다. 물리학적 관점만 제대로 가져도 겸허의 자리를 찾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한 대학교 교수 중 창조론을 주장하는 천문학자를 극렬히 비판하는 진화론자가 있었다. 그 천문학자는 연구실 천장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태양계 모형을 걸어놓았는데 마침 그 진화론자가 방문해서 그것을 보게 되었다. 진화론자가 물었다. ‘멋진 모형입니다. 누가 만든거지요?’ 천문학자는 ‘누가 만든 게 아니라 플라스틱 조각들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진화론자가 ‘농담하지 마시오. 이런게 어떻게 저절로 만들어집니까?’라고 하자 천문학자가 ‘그러게요.. 창조주 없이 우주천지가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말하고도 비슷하지요.’
바울은 천지와 만물이 신성을 나타낸다고 했다. 하나님은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하시고 지탱하신다. 본문처럼 별 자리들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제 때에 이끌어내시는 분이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와 법칙 아래 제 자리를 알고 피조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복과 안정의 비결이다. 오늘도 나의 세계관을 말씀으로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