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욥기 37:23-24

욥 37:23-24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때 두 가지를 언급한다. ‘초월’과 ‘내재’이다. 어마어마하게 크신 분임에도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양면성 때문이다. 범접할 수 없는 영광의 처소에 계시면서도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찾으시는 은혜가 공존한다. 구약시대엔 초월이 강조되었고, 신약시대는 내재가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이건 두 가지 요소는 항상 함께 있었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찾으시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필요보다 사람을 위해서였다. 피조물로서의 사람은 전능하신 창조주를 가까이 할 때가 존재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죄가 장애물이 되어 그 상태를 위협하며 벌려놓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메우시며 계속 찾아 오신다.


세상과 육신으로부터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회개는 은총의 수단이다. 꼭 잘못이 있어야만 회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개의 본질은 방향성이며 갈망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찾는 길이며 동시에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엘리후는 우리가 전능자를 찾을 수 없다 했지만 사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찾으신다.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에 내주하시며 마음을 두드리신다. 나도 역시 하나님을 찾는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요엘 3:21ㅣ2월 29일

욜 3:21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유다가 피를 흘린 이유는 심판때문이다. 심판을 받은 이유는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에게 배신이었다. 경고도 있었고 회유도 있었다. 그러나 듣지를 않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심판이 불가피했다. 이 때의 피흘

요엘 3:10-11ㅣ2월 28일

욜 3:10-11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화평의 시대에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 그러나 심판의 시대에는 거꾸로다. 싸워야 하고 지켜내어야 하는 시대다. 이해

요엘 2:23ㅣ2월 27일

욜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회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