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1:13-15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고대로 거슬러 올라 갈수록 주종관계의 격차는 심해진다. 고대사회는 신분제도에 의해서였지만, 오늘날은 금권주의에 의해서 사실상의 주종관계가 구성되는 거 같다. 욥의 시대까지 가지 않아도 불과 160년 전의 미국사회는 비인간적 노예제도로 악명이 높았다. 당시 흑인 노예는 말하는 짐승으로 간주됐고 온갖 비인격적이고 잔인한 인권 유린의 대상이 되었다.
남종과 여종의 권리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한다는 것은 ‘천부인권의 논리’와 같은 맥을 지닌다. 사회사상으로서의 천부인권은 계몽주의에서 비롯됐지만 욥은 창조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나를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었음을 인정한다. 내게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종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인권개념인 동시에 인간존중의 사고이다. 창조론이 주는 은혜의 관점이다.
예수님은 소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하셨다. 하나님 사랑의 계명에 바로 이어지는 계명이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 아가페가 온전할 수록 이웃 사랑 역시 온전해진다. 이웃 사랑의 정도는 내가 얼마나 아가페에 물들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이다. 오늘 내 안에 배인 아가페의 순도와 정도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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