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0:12~13

욥 30:12-13 그들이 내 오른쪽에서 일어나 내 발에 덫을 놓으며 나를 대적하여 길을 에워싸며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그칠 때 죄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그런 상태는 모든 관계의 변질을 가져온다. 아담과 하와의 갈등, 가인과 아벨의 비극 등은 집단화 이전, 개인관계에서부터 소외가 본질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욥은 그 소외를 이미 아내에게서 보았고, 이제 모든 관계에 내재해 있음을 본다.

욥은 사람이나 세상과의 관계가 죄라는 모래밭에 서 있는 것임을 절감한다.


죄 아래에서는 모두가 타인이다. 죄는 관계를 그렇게 파괴한다.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게 되면 서로에게 근원적 거리감을 드러낸다. 인간은 이런 상태에서 지옥을 느낀다. 이를 두고 사르트르는 ‘타인이 지옥이다.’라고 했다. 생물학적 관계와 사회 유지의 선이 무너지면 갈등과 공격은 노골화되고 소외는 깊어진다. 성령없는 사람, 성령없는 사회의 특징이다.


인간에게 성령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피조물인 인간을 창조주에게 부종시키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부종의 핵심인 아가페 사랑의 공급원이시기 때문이다. 부종(附從)(신 11:22)은 ‘꼭 가까이 붙어서 쫒으라’는 뜻을 지닌 성경의 명령이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며 이루어진다. 소외의 해결은 부종에 있다. 모두 나를 버려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 누가 나를 어찌 대하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 신앙인생의 정석이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