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10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바울이 말한 세상풍조는 본질적으로 사탄의 풍조다. 사탄적 가치관에 의해 조성된 의식구조이기 때문이다. 세상풍조는 그 동력을 돈에 둔다. 이 풍조는 미디어 등 갖은 수단을 통해 돈을 사랑하게 하고 집착하게 한다. 인간은 출생 때부터 이런 풍조에 깊이 물들면서 성장하고,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세월을 먹어갈 수록 돈과 권력에는 귀신이 붙어 있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돈과 힘이 있는 곳에 일어나는 복마전 같은 일들, 인면수심의 모습들 때문이다. 이 모두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용의 대상이다.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이며, 돈은 그 소명을 위해 써먹는 도구이다.


어느 투자의 귀재가 한 이야기가 오히려 타당하다. 교회를 다니는지 확인은 안 되었지만 그는 돈을 비전을 이루는 수단이라 했다. ‘돈을 사랑함’과 ‘돈을 사용함’의 어느 경계선이 있는 거 같다. 요셉은 명백히 후자의 사례다. 어떤 상황에서든 8절이 결론으로 최상이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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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