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24-25


딤전 5:24-25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목전에서 선과 악은 감추어질 수 없다. 사람에겐 은밀하게 진행될지라도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왼손이 모르게 행한 선이라도 하나님은 이미 기뻐하시며, 죄의 경우도 나만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혼자 하는 선행이라고 서운할 게 없으며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해서 육신에게 속절없이 질 것이 아니다. 민감한 양심은 축복이다. 화인맞은 양심은 이미 심판의 시작이다.


아름다운 향을 내는 꽃은 바위 틈에 숨어있어도 그 존재를 알게 되고, 악취를 내는 오물 역시 땅에 파묻는다 해도 결국 그 존재를 알게 된다. 먼저 심판에 나가는 죄가 있다. 같은 죄라도 사람에 따라 먼저 드러날 수도,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런 시차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죄에 대한 자각의 정도와도 관련이 있고 두터운 구조악과도 연관이 있다. 분명한 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유독 인간에게만 도덕률이 작동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강력히 암시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다. 늘 하나님 면전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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