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9:34

출 9: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완악함의 반대는 통회함이다. 사실 둘 다 연약한 본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하나는 고집으로, 다른 하나는 회개로 향한다. 진리의 빛이 비추어졌을 때 내 안에 어떤 반응이 지배적인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신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이 말한 통회함은 산상수훈의 애통함과 상통한다. 연약함과 무력감을 절감한데서 온 깊은 자각을 통해 결국은 하나님의 긍휼을 향하게 하는 마음이다. 대부분 이 지점에서 은혜와 진리를 체감하며 하나님 만남을 체험한다. 그 깊이가 바닥일수록 좋다. 혹이 남은 부분이 있을 때 언젠가는 바로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C.S.루이스는 이런 내적 각성만으로도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다. 신앙은 역설이 가득하다. 망할 거 같은 데 흥하고 벌 받을 거 같은데 위로를 얻는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도 없다. 늘 하나님의 중심을 향하는 마음이 의지처다. 오늘도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로 하루 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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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