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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5

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여호와, 또는 야훼로 발음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을 지닌다. 알게 해달라기에 스스로를 구분하셔서 알려주신 표기이지 상식적인 이름의 패턴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이름을 붙여주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이 가장 우리의 이해에 가깝게 하려고 제안하신 정체성 중 하나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초월과 내재,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하신다. 천상에도 계시지만 내 안에도 계신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초월자이시기도 하지만 내 영혼 깊은 곳에 좌정하시는 내재자이시다. 하나님은 천상천하를 향해 당신을 ‘정재우의 하나님’이라고 당당히 말씀하시리라 믿는다. 인생길에서 엎치락 뒤치락해온 부끄러운 존재이긴 하지만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타락으로 지옥도가 되어버린 이 행성에 뛰어 들어오신 하나님, 죄성과 육성의 수렁에 허우적대는 인생을 위해 그 수렁으로 뛰어 들어오신 하나님,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맞춤 캐어하시듯 챙기시며 이끄시는 하나님, 본문은 우리 하나님이 그런 분임을 알려준다. 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다. 나는 그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다른 날보다 그 분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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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의식함을 말한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을 집중해서 의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의 아름다움을 보려는 갈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체질이 있고 세상체질이 있다. 믿음체질은 진리에 속한 것이 아니면 마음에 잘 받지 않는 성향이다. 세상이 아무리 좋다해도 진정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 안맞는 음식을 먹는 거 같아 속이 편하지 않다. 결국은 속이 편한 것을 찾게 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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