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종말론 강화에서의 대부부의 강조점은 각성과 준비에 있었다. 오늘 대목에서는 ‘행하지 않음’의 치명성에 대해 경계하신다. 본문을 놓고 행함에 의한 구원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행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구원받은 증거로서의 행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즉 구원을 얻은 자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도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지극히 작은 자는 형제라 불리운다. 복음서에서 형제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의미한다.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본문의 일차적 대상은 어려움을 겪는 믿는 이들을 말한다. 그 어려움은 믿음으로 인한 어려움을 포함하는 데 교회가 역사적으로 받은 핍박의 상황을 감안하면 성도간에 필요한 덕목이다.
이차적으로는 주변에 존재하는 어려운 이들을 포함한다. 교회가 사회 구제에도 앞장 서는 이유다. 중요한 건 ‘행하지 않음’에 대한 각성이다. 저지르지 말아야 할 죄도 있지만 행함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태만도 죄가 된다. 그것을 ‘부작위의 죄’(the sins of omission)라 한다. 어려운 이를 돕는 사명의 폭은 넓다. 감당할 수 있는 부분서부터 역량 껏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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