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정신의학에서 낭광(lycanthropy)이라 부르는 병이 있다. 자신을 늑대나 이리로 생각하는 질환인데, 느부갓네살이 한동안 이 병과 유사한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본다. 절대왕정의 통치자가 정신질환을 앓으면 어마어마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조선시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로 광인지경에 이르렀던 연산군이나 학대로 숨진 아버지의 트라우마로 정신병을 앓았던 영국의 조지 3세의 경우 나라가 광풍에 휩싸였다.
이런 경우 왕은 유폐되거나 반정의 희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느부갓네살은 유폐되었다가 회복되면서 다시 재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깊이 깨달은 바를 토로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한다. 2장에서 신상의 꿈을 해석한 다니엘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한 바 있지만 그 때와는 깊이가 다른 고백이다. 왕의 회심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학자도 있지만 나는 진정이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고대의 절대군주가 스스로 뻐기는 일은 허다했다. 물론 다양한 형태로 교만의 대가를 치루었지만 그들 모두가 느부갓네살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니다. 그에겐 은혜가 임했다. 우선 다니엘과의 만남이 은혜였다. 그를 통해 여호와를 알게 되었다. 뿌리깊은 교만이 고난을 겪게 했지만 회심하는 계기가 됐다. 사람은 듣는 것만으로는 깊은 회개에 미치지 못하는 거 같다. 겪음을 통해서야 깨닫고 변화한다. 들음만으로도 깊은 깨달음과 회개에 이르기를 소망한다.
느부갓네살이 경고를 받았을 때 각성했다면 정신병으로 유폐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다니엘을 통해 알게 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호의가 재기의 은총을 입게 했다. 말씀의 경고나 요청을 패스한 적은 없는지를 살핀다. 없을리가 없다. 다시 거리낌이 있는 부분은 없는지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