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2:31

렘 52: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시드기야의 직전 왕으로 바벨론에 잡혀갔던 여호야긴이 37년이 지난 뒤 감옥에서 풀려나 왕으로서 예우를 받게 된다. 나아가 종신연금까지 보장을 받았다. 에윌므로닥은 왜 이런 호의를 베풀었을까. 분명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여호야긴이 옥중생활에서 회개했을 수도 있고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움직였던 하나님의 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혹은 둘 다 일수도 있고..

포로로 잡혀가 오랜 세월 감옥생활을 하던 사람에게 생각지 않은 일이 생겼다. 따지고보면 무기수 신세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낸 사람에게 왕의 지위가 회복된 것이다. 분명 이 소식은 바벨론의 유대 교민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뭔가 그늘이 거두어지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회복에 대한 소망과 기도의 마음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다윗의 후손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에 짐작이 간다. 그 계열에서 장차 메시야가 등장할 터이다. 약속에 바탕한 호의다. 약속을 어겼을 때 받는 징계도 있지만 약속의 존재 자체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그 바닥에는 평안과 소망이 흐른다. 내게 십자가 언약이 있다. 그 언약을 어길 때 치루는 대가가 있지만 버림받지는 않는다. 다시 깨우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열심이 작동한다. 만왕의 왕은 내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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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