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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0:29

렘 50:29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라

지난 주일 신앙여정에서 애통함이 지니는 복을 나눈 적이 있다. 애통함은 연약함과 무력감을 통감한데서 오는 겸허의 감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그 바닥이 주님의 품으로 차고 올라가는 발판이 되는 역설적 은혜다. 우울감이 들 정도의 부담스런 무게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애통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지니는 것도 유익이다. 바울이 고백한 바, 약한 그 때가 곧 강함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문제는 교만이었다. 세상 기준에선 그럴만도 했다. 대단한 위세를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쾌했다. 그들의 교만과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다. 자기네 신과 자기네 힘을 당할 자가 누구랴 하면서 목에 힘을 주었다. 교만을 담은 쓰레기통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그 통을 뒤집어 엎으신다. 논고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무시한 죄목이다.

신자들은 대체적으로 성령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주님에 대해 인격적 존중을 하지 못한다. 주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지식의 차원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보이지 않는 주님보다 보이는 세상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세상성에 쉽게 빠지는 이유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대했다고 전한다(히 11:27). 믿음은 그렇게 시작되고 유지된다. 오늘도 성령 안에서 그런 영적 지각이 새로워지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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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진언하고 있다. 추상같은 때에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왕의 광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이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을 중심으로 아둘람공동체가 세워진다. 환난 당한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인생의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윗에게서 그 출구를 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다윗임에도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기득권을 포기한 우정, 아버지와의 분리를 각오한 우정으로 다윗은 살았다. 결국 이 우정이 훗날 다윗을 왕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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