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1

렘 40: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은 전해진다.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필요없는 때는 없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울수록 그렇다. 그러니 심란할수록 말씀을 구해야 한다. 안그러면 엎친 데 덮치는 어려움을 자초하기 쉽다. 하나님은 그 와중에도 예레미야를 남겨두신다. 그는 듣는 귀를 가진 자다. 어떤 상황에도 길을 이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깊고 하나님의 열심은 식지 않는다. 환경을 가리시지 않고 돌아와야 하는 길, 가야하는 길을 제시하신다. 듣고자 하는 마음과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들을 수 있는 누군가가 여호와 말씀을 전하며 다독여야 한다. 소그룹과 교회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그보다 내가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들음을 꼭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체험으로 국한시키지 말자.

묵상하고 일독하면서, 깨달음을 나누면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헷갈리지 않게 흰 종이 위에 까만 글자로 인쇄까지 해놓으셨다. 토스토엡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중에 접한 말씀이 그를 위대한 작가로 변화되게 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길이 있다.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때로 육신이 고집피우는 일이 있지만 최소한 더 엇나가지는 않는다. 난 또 말씀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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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