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7:2-3

렘 37:2-3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시드기야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 된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다면 유다는 잔존했을까. 잔존했으리라 믿는다. 물론 대대적 각성이 필요한 일이다. 선지자의 존재는 희망의 불씨이다. 선지자의 대언은 여전히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기회를 걷어찬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중성을 보인다. 청종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 한다.

사람의 자기중심성은 이렇게 끈질기다. 하나님이 원하는 걸 알면서도 그 길로 돌아가는 게 어렵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벗어나 버렸고 시드기야 이전부터 힘을 받아 온 죄업의 물결 역시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다의 종말은 계시록의 종말을 연상케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도움은 기대한다. 여전히 돌이키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서서히 종말적 심판의 길을 향한다.

막판까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금식하며 회개한 니느웨를 생각하면 그렇다. 니느웨가 어떤 곳인가. 죄를 밥먹듯 저지르는 전형적 비신자의 상징이다. 그런 니느웨도 말씀을 듣고 회개하니 심판을 거두셨다. 시드기야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해야 했다. 일상에서 작은 각성들이 있게 해야 한다. 그 각성들이 모이면 대각성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육신의 관성, 죄의 관성, 세상물결의 관성을 거부하며 각성의 면적을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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