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6:23-24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여호야김은 선지자가 전한 말씀을 거부한다.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불에 태웠다. 정작 칼로 베어야 할 것은 죄의 사슬이었고 태워야 할 것은 자신의 죄성이었다. 그들이 찢어야 할 것은 자기들의 옷이었지 두루마리가 아니었다. 죄성과 죄업이 지은 내면의 견고한 진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바울은 사람 안에 내재한 이런 성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롬 1:28)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앙의 전승과 성전의 제사를 알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건 신실한 신앙이 아니라 이기적 종교성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형식에 불과했고 그 동기는 기복이었다. 바알을 섬긴 동기와 같은 수준이었다. 그들은 가라지였다. 신앙이 종교성이나 다급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각성과 회개를 통해 신실한 관계를 이루게 하신다.
내가 바른 코스를 가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것이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각성과 회개로 반응하며 변화에 힘쓴다면 구원열차를 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내면은 죄성의 견고한 진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한다. 내 안에 타오르는 불은 어떤 불인가. 성령의 불인가, 아니면 혈기에서 오는 불인가. 내가 찢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육성의 옷인가, 아니면 각성의 메시지인가. 오늘도 말씀을 챙기면서 마음의 반응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