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5: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레갑 사람들의 신실함에 대한 여호와의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요나답이 자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것은 그들의 신실함의 기준을 ‘나실인’의 수준에 두었기 때문이다. 일반 신자의 평균 수준이 아니라 구별된 공동체 수준이다. 가히 세례요한이 속했던 에세네파나 영국의 브루더호프 공동체급이다. 시류를 따르지 않고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살려고 나름의 기준을 정한 사람들이다.
유별난 거 같았지만 하나님은 내내 이들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 그들이 순종한 것이 선조의 명령이라 하셨지만 그 명령이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스스로 세운 작정이기에 기억할 거라 말씀하신다. 여호와를 따르는 신앙의 길에서 사람마다 강조점이나 수준이 다를 수 있다. 마치 오늘날 많은 교회가 주를 따르지만 무게 중심이나 강조점이 각각 다른 것과 같다.
교회에 따라 선교나 구제, 치유나 교육 등 초점이 다양하고 영성도 여러 교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강조점이 다를 수 있다. 은정은 ‘남은 자’(remnant)의 길을 추구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복음의 중심을 지키게 하는 영성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영성에 바탕한 것은 육신의 소욕이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함이며 사차원 영성을 말함은 ‘들음’과 ‘바라봄’을 통해 데스티니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나답이 장막에 살라거나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한 수준에는 훨씬 못미친다. 그들은 그 수준을 고수했기에 바알신앙에 물들지 않았다. 레갑사람들에 준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은정을 세운 의미가 없다. 은정은 성장보다 영성을 추구한다. 그간의 관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런 틀이 세워졌다는 것만 해도 은혜다. 오직 주님의 긍휼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