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7,21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는 악에 받친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자 김난도교수는 한국사회를 잔뜩 ‘날이 선 사회’로 규정한 바 있다. 분노가 이글거리며 증오와 불평이 기승을 부린다. 조금만 자존심이 상해도 마음이 부대껴 잠을 못이루면서 또 타인에겐 서슴없이 입총을 쏘아대는 고슴도치같은 관계가 수두룩하다. 성경은 분명히 선을 긋는다. 악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이 도발해 올 때도 선을 행하라 한다.

사랑이시며 만유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 하나님에게 내가 당신에게 속한 당신의 자녀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나무는 열매로 판정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악을 행할 때 그것을 견뎌내기 쉽지않다. 더우기 선으로 대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하나님은 성령의 감화가 아니면 안되는 일을 요청하시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세상논리로 행할 수 있다. 성령이 아니라 육성으로 살고 말씀보다 상식을 기준으로 사는 모순도 여전하다. 사실에서 진리가 아니라 견해로 빠져버린 것이다. 그 역시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신자의 삶은 성령의 감화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다. 그러면 예수를 닮아감이 가능하다. 예수를 닮아가면 예수의 나타남도 가능해진다. 우리 은정은 그 길을 가고 있다. 시간이 들어도 그 길을 가야 한다.

 

LIVING LIFE 바로가기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