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27-28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구별되었지만 사사시대와 왕국시절을 거치면서 우상을 숭배하며 쇠락의 길을 걷는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명찰이 주어졌지만 아브라함같이 믿음을 따라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선한 율법을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로 변질시키며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 나갔다. 성전 제사는 형식화되었고 바알과 같은 물신숭배로 욕망을 채우려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율법주의와 세속주의로부터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좁은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이다. 엘리야 때의 칠천 명이 그랬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그랬다. 이들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처럼 영혼의 본향을 소망하며 넓은 세상 길이 아니라 좁은 문, 좁은 길로 다니기를 선택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그 유전 자체로 구원을 확보한 줄 알았고, 제사라는 형식을 지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줄 알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율법을 지키면 그 공로로 용납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 잘못 짚었다. 하나님에게는 은혜를 깨달은 신실한 믿음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사랑과 신뢰로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하신다. 그들이 ‘남은 자’다.지금도 상황은 유사하게 흐른다. 교회의 멤버십이, 가문의 신앙전통이, 어떤 업적이 나의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금도 신실한 신앙의 절개로 하나님의 길을 가는 ‘남은 자’의 영성을 지니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보장할 수 없다. 썩어질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바꿔타는 길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오늘도 나는 남은 자의 영성을 점검하며 이 세상에서는 좁다란 주님의 길을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