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유대인들은 할례와 율법을 자랑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사실 자랑할만 했다. 어느 민족이 그런 은총을 받았던가. 그들은 하나님의 세계와 접속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그들이 구별된 존재임을 의식하며 율법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열방에 높임을 받고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헛짚는 우를 범했다. 할례와 율법은 마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했던 은총이었다. 신명기 6장의 쉐마 구절은 그 변화의 핵심이 하나님 사랑에 있음을 명백히 언급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만 집중했다. 속 마음은 여전히 죄성에 물든 채 표리부동의 한계를 벗어버리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약점을 보충하신 적이 있었다.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의 내용은 유대인들이 놓쳤던 마음의 부분을 수선한다. 할례와 율법은 행위보다도 마음가짐과 영의 상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의 멤버십이나 직분보다 중요한 건 영성이다. 산상수훈이 요청하는 영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의 기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은 능력이나 기적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빗겨가지 말아야 한다. 요즘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상고할 때 필히 점검해야 할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