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6:1-2

시 136:1-2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다가 오시지 않는다면 심판주가 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원자로 다가 오신 하나님을 일컫는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애굽에 가기 전,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다. 누가 보냈다고 해야 하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여호와였다.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해방시키고 자유케 하는 구원자로 찾아 오셨다는 것이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 인식은 두 가지 대척점에서 가능하다. 하나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위치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대상이라는 위치이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사탄과 귀신들은 후자에 속한다. 야고보는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줄 믿고 떤다고 했다(약 2:19).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만 따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거스른다. 영벌과 심판의 대상으로 찍힌 존재들이다. 알아도 그렇게 아는 것은 저주이다.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그 분을 따르는가 아니면 거스르는가의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함은 중요한 표식이다. 내가 사랑의 대상이지 심판의 대상이 아님을 나타내는 징표다. 감사와 찬양의 영성을 지닌 사람은 순종도 지닌다. 귀신들은 믿고 떨지만 자녀들은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순종한다.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내 영혼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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