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3:15-16

신 13:15-16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조선 시대에 파가저택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죄인의 집을 헐어버리고 그 집터에 웅덩이를 파 연못을 만들던 형벌이었다. 삼강오륜을 위배하거나 역모를 꾀했을 경우, 죄인의 처자를 노비로 만들고 죄인이 살고 있던 고을의 수령을 파직하는 등의 형벌이 뒤따랐다. 일종의 시범케이스였다. 히브리어로 ‘헤렘’이라 불리는 본문의 형벌도 유사한 개념을 가진 조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기문란에는 엄한 형벌이 따랐다. 신앙의 영역이 신앙의 대상을 바꾸는 수준의 변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헤렘’이 증거한다.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반역 수준으로 다루는 개념이다. 구약시대의 여호와 신앙이 단순히 종교적인 취향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규례인 것이다. 잘하지 않으면 조직(?)의 쓴 맛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계시록에 예고된 대환난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국기문란의 책임을 묻는 역사적 사건들이 될 것이며, 그 이전에 죽은 영혼들은 죽음 건너편에 가서 각각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신앙의 영역이 정신적인 위안을 가져다 주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차원을 지닌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의 법이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이 엄연히 작동하는 곳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옷깃을 제대로 여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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