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9:19-20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받고 있을 때, 산 아래에서는 아론과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절하는 일이 벌어졌다. 16절에 의하면 그들은 ‘빨리’ 하나님의 도를 떠났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아론과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셨을 때 모세의 중보기도로 심판을 철회하시고 속죄의 절차를 밟게 하신다. 모세가 말했다.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이 사건은 연단받은 자의 중보기도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 했는데 지금 이 경우가 그렇다. 모세는 연단을 통해 의인의 자리에 이르렀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인간의 도덕적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소돔의 심판 때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청을 접수하셨다. 중보자의 기도는 대단한 위력을 지닌다.
지금도 성전에서, 혹은 골방에서 깊이 기도하는 중보자 덕분에 하나님께서 계획을 조정하시는 일이 많이 있다고 확신한다. 대환난이 더딘 이유는 교회의 중보자 때문이며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은 자들의 존재 덕분이다. 휴거로 인해 이들이 들림받으면 곧바로 일어나는 일이 대환난이다. 나의 중보는 심판의 파국을 막고 회개와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중보하며 기도하는 자는 참으로 귀하다.
코로나 상황에서 은정에서 매일 9시간 씩 중보릴레이 기도회를 가지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행위만이 아니라 기도자의 영성이다. 모세처럼 말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