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마가복음 15:15

막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은 분명 무죄였다. 그 분을 재판정에 세운 것은 유대인들의 시기였다. 재판의 형식도 불법이었고 내용도 불법이었다. 판결의 기준은 공의가 아니라 무리의 만족이었다. 빌라도는 정치적 계산을 하며 불의와 타협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견뎌낼 수 없었다. 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그들의 불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제거하는 쪽을 택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은 애통하더라도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는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엄마의 품을 찾는 아이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엄마가 야단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다. 근본은 사랑에 있다. 무리의 만족은 내 안에 존재하는 육성의 만족을 상징한다.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에 대한 애착이다. 회개가 아니라 회피다. 말씀 앞을 떠나는 대부분의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만족과 계산과 타협은 예수님을 다시 못박는다.

나의 노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알면 둘 중 하나를 택한다. 말씀 앞을 떠나든지, 아니면 전적인 긍휼을 구하는 길이다. 바리새인들은 전자를 택했다. 그러나 주님은 긍휼을 구하는 자에겐 성령을 주신다. 그래서 무리의 만족이 아니라 주님의 만족을 구하게 하신다. 주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하실 때는 이유가 있다. 이제는 나의 육성을 못박아야 한다.

*나의 만족도 아니고 무리의 만족도 아닌 오직 주님의 만족을 생각하며 이루게 하시옵소서.

 

LIVING LIFE 바로가기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히 13:18-19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모든 일에 선하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 은혜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이 가능하다. 이 동력을 성령의 감화라 한다. 주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에 기도가 필요한

히 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접대한 나그네는 천사들이었다(창 18장). 만약 아브라함이 그들을 냉대했다면 그 뒤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이삭의 출생에 대한 예언부터 듣지 못했을 것이다. 생면부지의 나그네를 극진히 접대한 것은 형제 사랑에서 우러난 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2천 년 전, 하나님이 이 땅의 역사 속에, 사람들의 삶의 한 복판에 뛰어들어오셔서 위대한 대속을 이루셨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저주를 물리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같은 일을 계속 행하신다. 어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