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2:19

학 2: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간에는 예루살렘 거민들의 창고가 비어 있었다. 나무들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애를 썼지만 결실은 없었다. 부정이 복의 근원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민들은 다양하게 분석했을 것이다. 국제적 경제환경이 나빠서, 경작방식이 잘못되어서, 혹은 지도그룹의 부패가 문제의 인이어서.. 등등의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해결방식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핵심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성전건축이라는 데스티니를 외면했던 까닭이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안 계신 곳이 없지만 사랑과 관심의 표시로 세우라 하신 것이 성전이다.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시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인생의 실타래는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부터 풀어지기 시작한다. 성전은 그 만남의 인식이요 만남에 대한 갈망의 상징이다. 하나님 쪽에서도 그렇다.

물론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마음성전이 되었든 건물성전이 되었든 거기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감사하며 그 분의 길을 따르기로 작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하나님께 올려질 때 그 분은 말씀하신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 오늘은 어제부터였어야 했다. 아니 지난 달, 작년, 10년 전이어야 했다. 하나님은 다시 그 오늘을 열어주신다.

‘오늘’이라 하는 날에 마음성전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건물성전에도 나아가 엎드린다. 마음성전이 복된 이유는 언제 어디에서도 개방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찾아오심, 하나님의 열어주심이다. 눈물겹도록 감사한 배려요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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