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빈 무덤의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이 우리 교회 카페공간에 걸려 있다. 황망하고 당혹한 표정이 역력하다. 둘 다 측근제자였다. 한 사람은 수제자이고 또 한 사람은 애제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무지했다. 수난과 함께 몇 번씩이나 예고된 부활이 그들의 귀엔 남아 있지 않았다. 부활을 예고한 그 성경은 시편 16편 10절이다.
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구약에 예언적으로 예고된 일이었다. 영의 감각이 깨어난 제자였다면 수난과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만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날 대비를 했어야 했다. 어느 제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제자, 애제자, 막달라 마리아 같은 여제자 모두가 헛짚고 있었다. 꼭 내 얘기같다. 상식과 고정관념, 자기신념의 덫에 빠져 말씀도 온전히 못 듣고 못 알아듣는 그들이 바로 나다.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하는데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약점이 있다. 그 약점 때문에 제자들은 슬퍼하지 않아도 될 때 슬퍼한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때인데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데 염려한다. 그러니 나의 슬픔과 두려움과 염려 중 대부분은 말씀에 대한 무지에서 오거나 들은 말씀에 대한 본성적 불신에서 온다고 봐야 한다. 정서적 에너지의 낭비이다. 그래도 주님은 이해해주신다.
말씀을 골라보거나 걸러듣는 오류가 내게 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안 보는 경우도 얼마나 허다한가.
주님은 오늘도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기다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