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요셉이 드디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의 수준을 넘어선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란 실상 세상체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이 두려움을 넘지 못하면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가까이 느껴져야 한다. 그 두려움은 경외심을 말한다. 예수께서 한창 인기있을 때가 아니라 십자가 처형 직후에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믿음의 영역에 들어갔음을 증거한다.
직장의 상사나 거래처 사람, 혹은 내게 영향을 미치는 조직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지장을 줄 수 있고 괴롭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치를 보거나 비굴한 자세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손상시키게 해서는 안된다.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하지만 ‘지속적’으로 누구를 더 두려워하는가의 문제는 보다 근원적이기 때문이다.
요셉처럼 영적인 커밍아웃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예수께서 가장 약해 있을 때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은혜다. 진짜 깨달음이 아니고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험 상 세상에 눌려 전전긍긍하기보다 조금 유치하더라도 내질렀을 때 상황이 정리되는 때가 많았다. 그 분께 소속되었음을 분명히 천명하는 순간부터 그 분이 챙겨주시기 때문이다.
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잠하신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예수님을 잘 모시는 데 최우선을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