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십자가 앞에서 군인들은 속옷 얻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반면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한 백부장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발견하고 그가 의인이었음을 인정한다. 동일한 현장에서 각각의 관심사와 깨달음이 달랐다. 오늘날도 비슷한 거 같다. 교회 현장에서 동일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각자 바라는 포인트가 다르다. 어떤 이는 영생에, 어떤 이는 속옷 얻는 일에 관심을 집중한다.
십자가 앞에서 코로나19를 대하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육신의 안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영혼의 안위까지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는 영혼만 지닌 것이 아니라 육신에도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신의 상태를 잘 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상태를 살피는 일은 더 중요하다. 육신에 틈타는 바이러스보다도 영혼에 틈타는 바이러스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혼의 바이러스인 죄는 치명적인 일들을 엄청 저질러왔다. 인생을 망가뜨리고 영생을 놓치게 하였다. 질병의 고통은 비교도 안되는 영벌의 고통이 닥치게 했다. 육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마스크를 하고 손을 씻으며 사람들을 피한다. 영혼의 안위를 위해서 이렇게 구체적인 수고를 얼마나 했던가를 살피게 되었다. 교회출석으로도 안심할 수 없다. 속옷얻는 일에만 초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쓸 때 영혼의 마스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정제를 뿌릴 때 영혼을 소독하는 세정제도 잊지말아야 한다. 감염을 우려하여 사람들을 주의할 때 죄도 주의하여야 한다. 겸손히 엎드려 정결을 구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