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더’는 비교급 표현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덜 사랑한 것이다. 이런 마음은 자기착각에 종종 빠지게 한다. 하나님에게서 그리 멀지않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다. 이보다 고단수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기치를 걸고 사람의 영광을 챙기는 경우다. 성경에서 대표적 사례가 사울왕 케이스이다. 노골적이든 우회적이든 이런 경향은 거의 모든 삶의 분야에서 발생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은 포장지처럼 쓰여진다.
영광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인정욕구가 개재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누구로부터 더 많이 인정을 받는가인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라면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인정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어떤 방향을 잡든 나의 실상은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파악된다.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선 사필귀정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액션의 동기를 분별하는 일에 소홀해서 안되는 이유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너는 그간 당신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구한 적이 없더냐 물으시는 거 같다. 낯이 뜨겁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애쓰기도 했지만 그못지않게 은근히 내 이름 석자를 구한 적이 적지 않다. 천국에서 내 인생의 파노라마를 특수영상기기로 보게된다면 쥐구멍을 찾을 것임에 틀림없다. 대오각성하고 오늘이라 부르는 날에 세상에 걸친 인정욕구를 한 번 더 뒤지면서 깨끗이 정리하는 과정을 가져야겠다. 주님께 이중간첩처럼 찍히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태생적 죄인인 저를 긍휼히 여기사 삶과 생활의 동기까지 정화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