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가야바가 자기도 모르게 십자가 해석을 해버린 셈이다. 동기만 옳았다면 가야바는 바울보다 일찍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증거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로버트 레담이라는 신학자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대표성을 언급했다. 그의 죽음은 죄인된 우리를 대표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첫 아담의 죄로 많은 사람이 망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아담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는 은혜가 임했다.
롬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가야바와 가롯 유다는 악역을 맡아 이 일에 조력하게 된다. 사탄은 이처럼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을 통해서도 역사한다. 직접 나서지 않고 사람들이 지닌 자기중심성과 고정관념을 부추기기만 해도 악역을 불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생명으로 관계되지 않은 열성과 이념은 이처럼 위험하다. 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도 악역을 자행하는 경우가 있다. 십자군의 폐해가 그렇다. 생명 아닌 다른 것이 섞인 것이다.
나의 열성, 나의 선의는 온전히 순수한가. 비은혜와 비진리가 섞여 있지는 않은가. 세속성이나 야심은 없는가 등등을 살펴야 한다. 사실 옳다고 생각했는데도 연단을 받는 것은 비순수가 섞인 까닭이다. 지나 온 길을 보니 그렇다. 영성을 차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착각하거나 속기 쉽다.
*늘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청결한 마음으로 매사에서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