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예수님이 귀신들렸단다. 고정관념이 견고한 진이 되면 구세주를 귀신들린 자로 치부한다. 예수님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면 평범한 유대인들이 아니다. 종교적 식견에 관한 자신감이 가득했을 것이고 리더연 했을 것이다. 종교적 성취든 사회적 성취든 세상의 일정한 성취는 위험한 그늘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이, 진리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쉬운 것이다. 자기 신념하고 안맞으면 얼마든지 왜곡시키고 거부한다. 이쯤되면 예수님께서 왜 세리와 창기들과 즐겨 어울리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이 안돼 보이기도 한다. 어찌 성육신의 신비를 헤아릴 수 있었겠나. ‘내가 그다’라는 어마어마한 선언을 순순히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도 크게 다르진 않다. 중생 이전에 나의 예수님 인식은 무지이고 불경 그 자체였다. 은혜가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중생 이후는 괜찮은가.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며 적용하고 있는가. 그랬다면 염려와 근심은 왜 일어날까. 그랬다면 왜 영원한 즐거움으로 일관하지 못할까.
뭔가 내 안에 그늘지고 견고한 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죽기 전에는 이 생래적인 그늘이 완벽하게 거두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본디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연약함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깊이 아는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 영혼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영혼이 잘되지 않으면 범사도 평안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왜곡된 고정관념을 떨어내고 예수중심의 삶을 살아가려면 말씀과 성령의 강물에 뛰어들어야 한다. 더우기 지금처럼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세상을 덮으려 할 때는 묵상과 기도로 전능자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나의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 나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왜곡된 고정관념의 진을 허물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