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창세기의 태초와 요한복음의 태초는 질적으로 다르다.
창세기의 태초는 역사의 시작이지만 요한복음의 태초는 하나님의 선재(pre-existence)를 의미한다. 시작도 없는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증거한다. 요한복음의 별명이 독수리복음인데 예수님의 지상생애에 집중했던 공관복음서와 달리 그리스도의 선재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성육하신 예수님은 특별한 분이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말씀에는 내용과 기준이 담겨 있다. 어떤 이치를 선포하거나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털은 모든 만상의 이치이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진리라고 지칭하셨다. 그 분의 메시지와 액션, 의지는 진리의 나타남이다. 그 진리는 문자나 지식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살아있고 신성하신 인격으로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며 통치하신다. 그런 분이 나의 대속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찾아오셨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닮아야 하는 이유다.
말씀을 알고 따름은 인격적 교제를 바탕해야 한다. 그 말씀의 본질이 단순한 규칙이나 안내문이 아니라 인격적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대할 때 그 분을 의식하고 그 분의 마음을 헤아리려 해야 한다. 말씀은 담은 성경엔 사랑이신 그 분의 사랑이 줄줄 흘러넘친다. 이 사랑을 느끼며 말씀을 대함이 가장 베스트이다. 간밤에도 나눈 것처럼 신앙생활은 종교심으로가 아니라 말씀에 바탕해야 가장 건강하게 이루어진다.
종교심과 기복심은 말씀에 충실한 신앙과 엄연히 다른 것이다. 말씀에 바탕한 건강한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영성의 표식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바울이 지닌 자족의 영성 비결이기도 하다.
*2020년 새 해 내내 건강한 영성에 바탕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주어진 소임 다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