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0:9-10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요한은 천사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달라한다. 그러자 천사는 가지라 할 뿐 아니라 먹으라 한다.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배에는 쓴 맛이 올라왔다. 두루마리를 먹는 전례는 에스겔에게 등장한다. 에스겔의 배를 쓰게 한 것은 두루마리에 담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은혜는 영혼에는 꿀과 같다. 그 단 맛은 하나님과의 소통에서 오는 영혼의 위로이며 안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거룩하고 순전하여 사람에게는 낙심을 안긴다. 부패한 세상 기운과 부패한 본성의 뿌리로 인해 의의 결핍이 불가피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씀 앞에서 애통함을 피할 수 없다. 이사야가 선지자였음에도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탄식할 수 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애통함은 하나님의 자비를 알게 하기에 은혜이다. 쓴 맛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쓰다고 내뱉어서는 안된다. 요한은 두루마리를 먹은 후에 예언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예언은 대언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일이다. 불가피한 심판의 도래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예비된 어린 양의 대속을 전하는 대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단 맛과 쓴 맛과 대언의 소명... 깨달은 자에 나타나는 표식이다. 이 표식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