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3-14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요한은 영원전부터 계셨던 예수님의 원래 모습을 보았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아름답고 존귀한 모습이었다. 성육신하셨을 때의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던 초림시의 모습에 비하면 천상의 예수님은 위엄과 영광으로 가득했다. 나는 다윗이 분명 이런 아름다움을 봤을거란 생각이 든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율법의 무게가 엄중했던 그 시절에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요한이 봤던 것과 유사한 계시적인 체험을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빠지고 싶은 것이 이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무엇을 못견뎌 내겠으며 무엇인들 못감당하랴.
감사한 건 이런 분이 나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듯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난 그 분의 사랑의 파트너이다. 내겐 이런 분의 사랑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불원간 해후의 페스티벌을 가질 수 있다는 거 아닌가. 난 오늘도 그 소망을 선취하며 현실을 디뎌나간다.
*만주의 주이시며 사랑의 구주 예수님, 사랑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