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21:11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
기름부음받은 대제사장은 부모의 시신이라도 직접 수습할 수 없었다.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애도의 표시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구별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별됨은 이스라엘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왜 하나님은 시체접촉을 그토록 부정하게 보시는가. 시체는 사망의 결과이고 사망은 죄의 결과이다. 시체접촉 금지는 죄에 대한 각성을 부르는 경계의 표시였다.
본문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서도 소명을 받은 자가 지닌 무게를 본다. 그 비중은 부모와의 관계보다 무겁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흔들어서는 안되는 무게가 있다. 그것은 어떻든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런던교회 복구를 위해 파송받을 때였다. 그 이전에도 해외사역을 할 기회가 간혹 있었지만 부모님을 모셔야하는 위치에서 주저한 적이 있었다. 그런 중 런던에로의 부르심은 너무 분명했다.
부모님과 가족회의를 하던 중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나보다 더 아버지 되신 분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가야하지 않겠니. 가도록 하거라..” 그 시점이 런던교회 회복의 출발점이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시는 소명은 최우선의 의미를 지닌다. 꼭 성직자만이 아니라 일반 성도라 할지라도 기름부으심에 버금가는 부르심이 있다면 사사로운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그 길을 갔다.
*기름부으심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영분별을 잘하게 하사 관유를 손상시키지 않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