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2:6-7


122:6-7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예루살렘이 귀한 이유는 성전이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이다. 결국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을 접견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귀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성경은 그런 사람이 형통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터치로 인해 평안의 도시가 되고 형통의 샘이 된다.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다. 그로 인해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그 성령님을 모신 사람이 성전이 되는 파격이 열렸다. 지리적 예루살렘도 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모신 성도들의 마음 또한 예루살렘처럼 귀히 여기신다. 그래서 마음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게 된다. 거기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하심 때문이다.

성령께서 계신 마음은 성전이 되고 그 마음을 담고 있는 나의 신체는 예루살렘 성이다. 이렇게 하시기까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나, 그래서 성전이 되게 하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필경 마음에 병든 부분이 있음이다. 영성가들은 그런 마음을 ‘병든 자아’라고 한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 내 마음의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예루살렘에 먼저 평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또 오늘 내 마음을 뒤져 사랑과 평안을 찾는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사랑하듯 종이 마음성전을 귀히 여기며 그것에 내주하신 성령님을 깊이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LIVING LIFE 바로가기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욥기 6:10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