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3:5-8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높은 위에 계신 하나님의 스스로 낮추심’은 성육신을 의미한다. 낮아지신 그 곳은 진토와 거름무더기이다. 구만리 장천 먼 곳에서 측은히 여기신 정도가 아니라 진토를 묻히시고 거름무더기에까지 찾아오셔서 빠져 버리셨다. 사실 그것은 유도 아니다. 아득한 ‘하나님에게 버림받음’의 나락에까지 떨어지셨다. 그 모든 일은 모두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 위함이다. 가난한 나를 진토에서, 궁핍한 나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시기 위함이다.
이 갤럭시에서 지구는 눈에 그리 띄지도 않는 작은 행성이다. 거기에서도 나는 꼬물꼬물하는 벌레처럼 잠시 살다가는, 눈에 띄지도 않는 필부필부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존재의 내용조차 거름덩어리이다. 내가 길가나 하치장에 버려진 거름덩어리를 어떻게 보았던가. 하나님의 관점에선 그게 바로 나였다. 그것을 깨달은 이사야는 하나님의 뵈었을 때 스스로에게 화를 선언했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내가 있는 데까지 찾아오신 것이다. 더럽고 누추하고 지저분한 곳에 있는 더럽고 지저분한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십자가는 그 결정적 증거이다. 십자가를 보며 비로소 나는 마음을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심에도 불구하고 나를 일으키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감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는 탁월함을 주셔서 방백들과 함께 세우신다.십자가를 더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